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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핑 패키지상품의 먹이사슬, 최종 피해자는 고객

    캄보디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작년 한해 48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캄보디아를 찾았다. 전체 순위로는 베트남, 중국에 이어 한국인이 42만여명으로 3위다. (포첸통 국제공항)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 관광지 씨엠립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김성수(가명, 34)씨는 허탈한 기분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는 한국에서 온 단체 패키지 관광객 10여 명과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의 지갑엔 손님 중 한 명이 팁이라며 허리춤에 슬쩍 찔러 준 20달러짜리 지폐 한 장과 회사에 제출할 입장권, 식당영수증 뭉치뿐이다. 3박 4일 동안 고온다습한 무더운 날씨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마이크를 붙잡고 목이 쉴 정도로 가이드 일을 했지만, 이게 3일간 고생한 대가였다.

    이제 그는 몸도 마음도 지쳐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한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단체관광객들을 안내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돈을 벌지 못했다. 지난 한 달간 그가 번 돈은 80만~9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월 80만~90만원... 세계적 관광지 가이드이건만


    캄보디아에는 작년 한 해 동안 480여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았다. 캄보디아 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그중 한국인 관광객은 약 42만 명으로 베트남, 중국에 이어 3번째로 많다. 씨엠립에서 일하는 한국인 가이드는 대략 400~500명이다.

    최근 들어 앙코르와트가 세계적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이 없어지고 관광객 수도 늘었다. 그러나 올 4월 세월호 참사에 이어 6.4 지방선거와 월드컵까지 겹치면서 한국인 관광객 수는 급감한 상태다. 김씨는 이번 여름 성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한때 그에게도 호시절이 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상당수 현지 여행사들이 소속 가이드에게 일비를 지급했다. 여기에 손님들이 일괄적으로 걷어주는 팁도 있어, 무리한 쇼핑이나 선택관광(옵션)을 강요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다. 성수기에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수입이 더 좋았다. 좀 더 일찍 가이드로 전업하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4년 태국 쓰나미 여파가 이웃나라인 캄보디아 여행시장에도 들이닥쳤다. 태국을 찾던 관광객들이 급격히 줄자, 사정이 어려워진 한국계 여행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웃나라인 캄보디아로 대거 몰려든 것이다. 그때부터 '랜드사'라 불리는 현지 여행사들 간에 살아남기 위한 과당경쟁이 본격화됐다. 항공요금보다 싼 패키지 상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덤핑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2000년대 초 100만 원 이상 가던 캄보디아 3박 4일 단체패키지 상품가격이 원가 이하로 떨어졌다. 수익구조가 갈수록 나빠지자 대부분의 현지 여행사들은 가장 먼저 가이드에게 지급하던 일비를 없앴다. 이어 손님이 쇼핑해서 수익이 발생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이때부터 등장한 것이 일명 '메꾸기'(메우기)다. 바가지 쇼핑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지상비'라 불리는 현지 여행경비의 적자를 충당하는 것이다.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프놈바켕에 오른 외국인 관광객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툼레이더 촬영장소에서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모여든 외국인관광객들. 작년 한해동안 캄보디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수는 약 480만명에 이른다고 캄보디아 관광부가 밝혔다.

    29만9천원 여행상품의 이면

    예를 들어, 캄보디아를 3박 4일간 여행한다고 해보자. 60만~70만 원대 중저가 여행상품의 경우, 사실 인천-씨엠립 구간 이코노미석 왕복항공요금 수준이다. 단체 티켓이 일반티켓보다 저렴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 여행사는 항공사측에 요금을 지불하고 1인당 10만~20만 원의 수입이 발생한다. 큰 돈벌이는 못되지만 모객 인원이 많을수록 박리다매이기 때문에 한국 여행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수익모델 중 하나다.

    대신 현지 여행사에서 집행해야 할 지상비 즉, 차량비, 호텔비, 식대, 입장료 등 대략 120~150달러의 비용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규모가 큰 한국 여행사들이 선택하는 문제해결 방식은 이렇다. 1인당 현지에서 드는 지상비를 현지에서 관광행사를 주관하는 '랜드 여행사'(현지 여행사)측에 전가시킨다. '29만9000원짜리 초저가 상품'이라면 현지 여행사가 부담해야 할 여행경비의 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럼에도 랜드 여행사들은 서로 손님을 보내달라고 아우성이다. 한국의 대형여행사들 입장에선 입맛에 맞는 랜드 여행사를 골라 서로 경쟁을 시키면 그만이다. 그런데 랜드 여행사들은 왜 손님들의 여행경비까지 떠맡아가면서 손님을 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씨엠립에서 7년 넘게 여행사를 운영 중인 이성태씨(가명)는 이런 관행이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자체 모객능력이 없는 랜드 여행사들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모객을 하는 여행사가 손님을 보내주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을'의 입장이다. 이렇게라도 팀을 받지 않으면 랜드 여행사들은 생존하기 힘들다. 절대 '갑'의 위치에 있는 한국여행사에 밉보이면 안 된다. 식당, 호텔숙박, 차량비 등 지상비를 못 받더라도 급한 대로 우선 여행객 손님을 받아야 여행사도 그나마 유지될 수 있다. 적자가 나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단체여행객이 많을수록 한 두 그룹에서 쇼핑 대박(?)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오로지 운에 맡긴다. 솔직히 위험한 도박이나 다름없다."

    그는 랜드 여행사가 적자를 면하려면 관광객들이 1인당 최소 300~400불 정도를 써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손님이 일정 금액 이상 쇼핑을 하지 않으면, 랜드 여행사에서 나머지 적자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덧붙였다.


    공항에서 관광객 손님들을 기다리는 현지인들 공항에서 관광객 손님들을 기다리는 현지인들의 모습. 대부분의 한국인 가이드들은 한국 여행사와의 관계 때문에 인터뷰 과정에서 사진을 찍거나 실명을 밝히는 것을 꺼려 했다. (포첸통 공항 입국장 전경)

    대형여행사-현지여행사-가이드-관광객... 피를 보는 먹이사슬

    씨엠립에서 10년 넘게 가이드를 해온 이상철(가명)씨 의견도 비슷하다.

    "랜드 여행사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 손님들에게 쇼핑을 강요하거나 선택 관광(옵션) 등 바가지를 씌우는 방법이다. 쇼핑 가격을 터무니없이 부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랜드 여행사에서도 성실하고 박식하며 손님에게 친절한 가이드 대신 회사 영업이익에 도움이 되는 소위 '선수(?) 가이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해박한 역사지식 같은 가이드 본연의 업무능력은 뒷전이다. 쇼핑 매출이 높은 가이드가 더 대접을 받는다. 손님들에게 쇼핑을 강요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매출실적이 좋아야 가이드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가이드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압박을 통해 손님들의 지갑을 여는 방법만 궁리하거나, 눈치껏 손님이 알아서 사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현지 유적지나 문화, 역사에 대한 설명 대신 지루하고 짜증나는 현지 특산물에 대한 설명이 더 길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근래 들어 유가가 폭등하는 바람에 전 세계 항공요금도 덩달아 많이 오른 상태다. 반면 여행상품 가격은 수년째 제자리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떨어졌다. 현지 여행사 일부는 도산을 한 뒤 야반도주를 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현지 여행사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가이드를 쥐어짠다. 먹이사슬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가이드들에게 현지 여행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부담시키기는 것이다.

    상당수의 여행사가 통산 관광객들이 1일 10불씩 내오던 가이드 팁을 회사로 귀속시켰다. 이 돈은 가이드의 수고비가 아닌 현지 여행사의 지상비 적자를 메우는데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관광객들의 경우, 이미 팁을 걷어 줬는데도 가이드가 쇼핑과 선택 관광에 너무 욕심을 부린다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이드 김성수씨가 일하는 여행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벌써 시작된 지 5~6년도 넘은 불문율에 가까운 나쁜 관행"이라고 말했다. 다른 현지 여행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심지어 일부 여행사들은 손님들로부터 걷는 1인당 물값 같은 사소한 돈 마저 회사에 입금시키도록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 가이드는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이런 불만조차 공식적으로 소속 여행사측에 말하는 가이드는 없단다. 한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자.

    "가이드 역시 현지 여행사와 관계에서 또 다른 '갑을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회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회사규정으로 못박아놓아 달리 항의할 방법도 없다. 혹시라도 이 문제를 거론하면 바로 팀을 못 받는 등 불이익을 당하거나, 퇴사조치를 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투어 홍보과장은 8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가이드 팁이 현지 여행사의 부족한 지상비를 충당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자사 대부분의 여행상품들은 정상적인 수준의 지상비를 현지 랜드사에 지급하고 있다"면서 "(가이드와 현지 랜드사의)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저가상품이라고 해서 모두 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앙코르 초기유적지 중 한 곳인 바콩 사원의 모습.

    불친절 가이드·옵션 강요 근절하려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패키지여행 관련 소비자 피해신고 건수는 지난 2011년 6922건에서 2012년 7701건, 2013년 1만159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또 한국소비자원 등이 지난해 36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 200개를 이용한 여행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83%가 추가비용을 냈다고 응답했다. 한국 관광객들이 여행지에서 가장 불만을 느끼는 부분은 가이드의 불친절과 자질 문제, 그리고 바가지 쇼핑과 옵션 강매였다.

    패키지 여행상품에 관한 불만피해 접수가 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월 10일 해외패키지 여행상품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고시했다. 모든 필수경비를 상품가격에 포함시키고, 가이드 팁도 소비자가 반드시 지불해야 할 경우 상품가격에 포함시켜 광고해야 하며, 현지에서 가이드 팁을 지불하는 경우 현지에서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했다. 선택경비는 소비자가 참여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표시하고 가이드 팁을 기재할 경우 가이드 경비와 구별해 소비자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지불여부를 결정할 수 있음을 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택관광의 경우에는 참여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참여하지 않을 경우 대체 일정도 함께 공지해야 한다. 이 조치는 오는 15일부터 시행되며 위반했을 때는 1억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랜드 여행사와 가이드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8년째 랜드 여행사를 운영해온 이호석(가명)씨는 선택 관광과 관련된 조치를 한 예로 들며 "정부당국의 조치는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조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여행사들이 앞장서서 원가에도 못 미치는 여행상품을 내놓고 지상비도 쥐꼬리만큼 랜드사에 보내는 판국에 가이드들의 선택 관광 강요 등 바가지 상혼을 막겠다는 정책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고 항변했다.

    5년간 가이드로 일해 온 배상준(가명)씨도 "가이드 팁 지불여부를 표시한다고 한국 대형여행사들의 허위 과장 광고에 관한 규제일 뿐, 저가상품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실제로는 가이드 경비와 팁도 대부분의 현지 가이드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다. 손님들로부터 받은 팁을 소속 여행사에 고스란히 전액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인건비라도 벌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또 다른 편법적인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과연 해외여행패키지의 근본적인 폐해를 근절시킬 수 있을지, 소비자들의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 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