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문화
페루는 토착 문화와 에스파냐 문화가 서로 융합하거나 병존하는 특이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4천여 년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페루의 중부•북부 지역에는 BC 10세기에서 AD 1세기에 걸쳐 조성된 토기•피라미드 모양의 신전 등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또 8세기 이전에 이미 독자적인 도예술 및 직조 기술을 갖추었고, 8세기부터 12세기까지는 호수를 중심으로 한 고원지대에 티아우아나코 문화를 형성해 동남부의 안데스 산악지방에 공공건물•신전•무덤 등을 건축하는 한편, 견고하면서도 거대한 석조건축 양식을 이룩하였다. 이어 15세기에 잉카가 페루를 통일하면서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어 안데스산맥 일대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잉카문명을 형성, 멕시코의 아스테크문명, 멕시코 남부 및 중미의 마야문명과 함께 중남미 지역 3대 토착문명으로 불린다. 이들 잉카인(人)은 건축, 금•은 세공, 관개농경, 기하학적 요새 구축 등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그 가운데 특히 에스파냐 침공 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추픽추유적이 유명하다. 1532년 에스파냐에 정복된 후에는 교회•수도원•수녀원, 귀족의 저택 등 유럽식의 화려한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쿠스코(Cusco)•리마(Lima)•트루질로(Trujillo) 등이 대표적인 도시다. 리마는 페루의 수도로서, 특이한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식민시대 건축물들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리마에는 또 6,500여 점의 금 장신구들을 전시하는 황금박물관(Gold Museum)이 있어 잉카문명의 부와 잉카인들의 금•은 다루는 솜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민속축제에는, 잉카시대부터 내려오는 종교적 행사로 매년 6월 쿠스코 근교 사이크만광장에서 태양제를 행하는데, 전세계에서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든다. 그밖에 남미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세비체(Cebiche)•안티쿠초스(Anticuchos)•오코파(Ocopa)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음식이잇다. - 페루의 역사 - 페루의 역사는 원시 수렵농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2만 년에서 BC 10세기까지 안데스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몽골계 원주민이 거주하였고, 이후 이들이 고대 토착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다 1세기까지 정착 농경문화를 형성해 이들이 만든 토기•피라미드 등의 신전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이 시기를 차빈문화로 부른다. 이어 BC 3세기~AD 8세기의 제1기 지역문화 시기를 거쳐 8~12세기의 통일국가 형성기를 티아우아나코 문화로 부르며, 이후 15세기까지를 제2기 지역문화시기로 부른다. 15세기에 이르러 망고 카파크가 나타나 잉카(태양의 아들)가 페루 전역을 지배함으로써 케추아족(族)의 잉카 제국(帝國)이 탄생하였는데, 전성기에는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중부에 이르기까지 1200만 명에 달하는 백성과 광대한 지역을 다스렸다. 그들은 정비된 정치조직을 바탕으로 관개농업을 발전시켜 서(西)유럽을 능가하는 문명을 이룩하였고, 특히 거석을 이용한 건축술, 도시계획•의술 등에 뛰어났다. 1532년, 에스파냐의 F.피사로에게 정복된 후 300년 동안 에스파냐의 식민지로서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 에스파냐는 1535년 리마에 부왕청(副王廳)을 설치, 인디오를 노예로 삼아 금과 은을 채굴함으로써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부(富)를 누렸다. 그러나 에스파냐 귀족들의 영화도 1781년 콘도르캉기(두파크 아마르)가 이끄는 인디오들의 대규모 반란을 계기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1814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인디오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821년 7월 '페루의 보호자'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산 마르틴 장군이 리마로 들어와 페루의 독립을 선포한 뒤, 시몬 볼리바르가 다시 리마에 입성(入城)해 1824년 아야쿠초전투에서 에스파냐군을 격파함으로써 독립을 달성하였다. 1845년부터 1862년까지는 세 차례나 대통령을 역임한 카스틸랴의 지도 아래 약간의 진보정책이 실시되고 자유주의 헌법이 제정되는 한편, 구아노 판매에 따른 호황으로 근대국가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879년 영국과 미국의 이해대립을 배경으로 한 대(對) 칠레전(戰)에 휩쓸려 크게 패함으로써 1883년 초석과 구아노 산지(아리카•타크나)를 칠레에 할양하였는데, 이 지역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분쟁 대상이 되어 오다가 1929년 리마조약에 따라 칠레는 아리카를 차지하는 대신 타크나는 페루에 반환되었다. 그후 레기아 독재정권, 산체스 세로와 오스카르 베나비데스 군사정권(1930~1939)을 거쳐 1939년 마누엘 프라도의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제2차세계대전 동안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였으나, 1948년 장군 오드리아가 군사혁명을 일으켜 1956년까지 다시 독재정치가 계속되었다. 1956년 제2차 프라도 정권 때도 국민 억압정책이 실행되었고, 1962년 쿠데타를 거쳐 이듬해 7월 인민행동당의 벨라운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종래의 정권과 다를 바 없어 1965년부터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이 일어나기 시작해 급속히 확산되었다. 1968년 10월 쿠데타를 거쳐 집권한 벨라스코알바라도 군사정권은 미국계 석유회사(IPC)를 국유화하고, 농지개혁법을 실시하는 등 민족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지나친 급진 정책과 석유파동으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1975년 베루무데스 장군이 이끄는 군부 온건파가 쿠데타에 성공한 뒤 1980년 5월, 벨라운데테리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12년간 계속된 군정에 종지부를 찍었고, 1985년에는 알란 가르시아 페레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다 1990년 7월 선거에서 후지모리가 당선되어 임기 5년의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초인플레이션 진정과 재정적자 해소에 주력하는 한편, 20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 해결에 역점을 두고 긴축 경제 개혁 조치를 발표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995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이듬해 일본대사관저 인질사건이 일어나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199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가입을 거쳐 1998년에는 에콰도르와 평화협정을 조인함으로써 170여 년 간 지속된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0년 11월, 쿠리 야당의원 매수사건 파문으로 사임한 뒤 2001년 6월 3일,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톨레도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페루의 사회 페루는 라틴계 백인,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메스티소, 인디오와 기타 아시아계 이민으로 구성된 다인종 국가로,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한 백인이 정치•경제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인구의 40%를 점하는 메스티소는 실질적인 산업•노동 인구이며, 47%를 차지하는 인디오는 주로 농업과 목축업에, 1%를 차지하는 일본•중국•한국 등 동양인은 주로 상업에 종사한다. 인구의 32.3%가 해안지역에 거주하며, 산악지역에는 35.7% 정도의 인디오가 살고, 밀림지대에도 12.1%가 산다. 페루는 특히 인종 간 빈부 차가 극심한데, 이러한 현상은 의식주에서도 나타난다. 도시의 중산층 이상은 유럽식 의복을 착용하지만, 산악지대의 인디오들은 손으로 짠 전통 모직옷을 주로 입는다. 또 백인들은 포도를 원료로 한 증류주와 칵테일을 즐겨 마시는 반면,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끓여 설탕을 혼합한 음료수를 마시며, 백인이 서구적 주거 생활을 영위하는 반면, 산악 및 밀림지대에서는 대부분이 토막집에서 어렵게 생활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로, 법률상으로는 7∼16세를 의무교육 기간으로 정하고 있으나 문맹률이 아주 높다. 초등학교는 6년제이며,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중고등학교는 5년제이며, 대학은 2년 과정인 초급대학과 5년 과정인 일반대학으로 나뉜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551년에 창립된 남아메리카 최고(最古)의 대학인 국립 산마르코스대학 외에 33개의 대학이 있다. 활자매체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 된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엘 페루아노》《엘 코메르키오》를 비롯해 500여 종의 정기간행물이 발행되며, 리마•아레키파•우앙카요•트루히요•피우라 등에 11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있고, 리마에만 34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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