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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프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입니다.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와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에 이어 남미 주요국의 좌파 여성 지도자로 이름을 올렸고요. 하지만 ‘공주파’인 크리스티나 같은 인물하고는 경력의 ‘급’이 다르다.

    호세프는 1947년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벨루오리존치에서 불가리아 출신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는데 사회주의를 지지했고, 어머니는 브라질 사람이었습니다.
    1964년 호세프가 아직 10대 소녀이던 시절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납니다. 호세프는 고교 시절부터 군사독재에 반대하면서 공산주의자가 됐습니다. 1960년대 후반 호세프는 맑스주의 게릴라 조직인 콜리나(COLINA·민족해방사령부)에 들어가, 군사정권에 맞선 무장투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브라질 언론들은 호세프가 조직관리에만 관여했다고 보도했지만, 함께 싸웠던 동료들은 그가 “스스로 무기를 다뤘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호세프는 겨우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콜리나는 ‘극렬 좌파’ 조직이었고, 모험주의적이었습니다. 투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강도를 했다가 조직원들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호세프가 미나스제라이스 연방경제대학에 다니고 있던 1969년 콜리나는 리우데자네이루로 근거지를 옮깁니다.

    그곳에서 호세프는 이후 30여년간 인생의 동반자가 된 공산당 간부 카를로스 데 아라우주를 만났습니다. 그 때 이미 아라우주는 서른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이 아라우주라는 인물은 라틴아메리카 곳곳을 다니면서 피델 카스트로, 체게바라와도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요.

    좌파 조직들이 모여 종합연맹한 뒤에 VAR팔마레스(VAR Palmares·맑스-레닌주의 파르티잔 정치군사기구)라는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호세프와 아라우주는 곧 이 조직의 지도자가 됩니다. 호세프를 추적하던 군사정권 수사기관들은 그를 “(체제) 전복의 잔다르크”, “전복세력의 여(女) 교황”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모진 고문도 이겨낸 파르티잔 여전사

    옛 투쟁동지들도 호세프의 주도적인 역할에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그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다소 센세이셔널하게 취급된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호세프가 실제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상파울루 주지사 공격사건 등에 연루됐다고 알려진 것이 그 한 예입니다.
    어쨌든 군사정권은 호세프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추적했습니다. 1969년 VAR팔마레스는 군사정권의 수혜자인 기업인 안토니우 델핌 네투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군사정권이 ‘브라질의 기적’의 주역이라고 선전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 전 조직원들이 체포되면서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호세프는 이 계획에 반대했다고 하고, 그 해 결국 조직은 분열됐습니다.

    이듬해인 1970년 초 동료 활동가가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호세프의 은신처를 불어버렸습니다. 호세프는 체포돼 22일간 가혹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구타는 물론이고 자동차용 전선까지 동원한 전기고문 등을 당했고, 건강도 많이 상했다고 합니다. 그런 고문 속에서도 호세프는 조직의 동료들을 보호했습니다.

    동반자였던 아라우주는 같은 해 가을 체포됐습니다. 그런데 이 작자는;; 호세프가 붙잡힌 뒤 또 다른 게릴라 운동가로 여배우 출신인 베테 멘데스와 바람을 피웠다고 합니다. 어쨌든 호세프와 아라우주는 수감 중 오히려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출소 뒤 결혼해 오랜 세월을 함께 했지만 1994년 별거에 들어갔고 2000년에는 결국 이혼. 아라우주는 결혼 기간에도 바람을 피워 혼외 자식이 있었다고 하지요)

    감옥에서 나와 '합법 정치'에 뛰어들다

    호세프는 2년 1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 1973년부터 히우그란지 두 술 연방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훗날 대통령이 된 종속이론가 카르도주와는 이 무렵 학술행사에서 만나기도 했다는군요. 호세프는 이 때부터는 ‘합법의 영역’으로 들어가 좌파 투쟁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군사정권 고문피해를 증언함으로써 수사당국에 줄곧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피나스 주립대학으로 옮겨 경제학 석사·박사과정을 거쳤는데, 박사학위는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학력 허위기재’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1980년대부터 호세프는 포르투알레그레(요사이는 세계사회포럼 개최지로서 ‘전세계 좌파의 집결지’로 유명하지요)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히우그란지 두 술 주(州)의 정치인 겸 행정가로 변신했습니다. 주 정부 각료를 거쳐,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룰라 정부의 광업에너지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장관 시절 호세프는 2015년까지 농촌지역 대부분에 전력을 공급한다는 ‘루스 파라 토도스(모두를 위한 전기)’ 프로그램을 추진했습니다. 브라질이 산유국이고 에너지 대국이지만 농촌 지역은 여전히 전기가 없는 곳이 많고, 빈부격차가 에너지 소비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거든요.

    과거 카르도주 정권 때도 ‘루스 누 캄푸(농촌 전력화)’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었는데, 이걸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까지 농촌지역의 절반만이 전기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룰라 정부는 포메 제루(Fome Zero·굶주림 제로)라는 빈곤타파 프로그램을 펼쳤는데, 호세프는 전기라는 기본 인프라도 이 계획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호세프의 전력공급 계획은 제법 성과를 내긴 했지만, 여전히 목표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 장관을 거쳐 룰라의 비서실장으로

     

    남편 아라우주와 함께 노동당에서 활동하다가 뒤늦게 노동자당으로 옮겨갔지만 룰라의 신임을 단단히 얻은 모양입니다. 2005년부터 2010년 대선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했습니다.

    게릴라 출신 정치인이라는 것은 호세프에게는 훈장이자 족쇄였습니다. 그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자 상파울루 주재 미국 영사관이 미 국무부로 호세프에 대한 정보를 전송했는데, 게릴라 활동 전력이 상당부분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미국 측은 호세프가 ‘워커홀릭(일 중독자)이고, 경청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지만 정치적 기술이 좀 부족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어쨌든 호세프는 맑시즘에서 출발해 시장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실용주의자로 옮겨갔지만, 늘 자신의 ‘급진적인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합니다.

    2010년 대선 캠페인에서 호세프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의 마르틴 오브리,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 유럽녹색당, 프랑스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 등이 공개 지지서한을 보냈습니다. 브라질의 유명한 지식인·예술인들로부터도 지지선언이 줄을 이었습니다. 호세프는 56%의 득표율로 당선돼 2011년 1월 1일 취임했습니다. 호세프가 불가리아계라는 점 때문에, 당선 뒤 불가리아에서 호세프 붐이 일기도 했다는군요 ㅎㅎㅎ

     

    대통령 되자 장관 24% 여성 임명

     

    호세프는 당초 내각의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을 완전히 지키지는 못했고, 24%를 여성으로 임명했습니다. 퍼센트로 말하니 좀 이상하긴 한데 1기 내각 37명 중 9명이 여성이었고요. 노동자당 소속 각료는 절반이 좀 안 되는 16명이고, 여러 정당 출신으로 각료직 12명을 채웠답니다. 환경부장관, 대외관계부 장관, 중앙은행장 등 나머지 자리는 무당파 독립적인 관리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재선 성공했지만 앞날 험난할 듯

     

    지난해부터 브라질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발단은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의 버스 요금이 올라갔다는 것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열악한 보건, 의료, 교육, 교통 인프라 문제가 모두 터져나왔지요. 시위가 좀 사그라드는가 싶더니 상파울루에서 다시 임금인상과 교원 확충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요.

    특히 올 월드컵(안타깝게도 7대 1로 지고만... ㅠㅠ)과 2016년 리우 올림픽 준비 때문에 인프라 투자가 늦어지고 빈곤층을 위한 예산이 줄어들면서 그에 대한 반발이 거셌습니다.

    호세프는 어쨌든 재선에는 성공했으나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호세프는 전임 룰라 정부의 성공적인 정책들을 잘 이어받아 해오긴 했지만, '정부와 정책은 인기인데 호세프 개인은 인기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다소 거만한 이미지에 개인적 매력이 떨어지고, 정치적 ‘기술’이 부족하다는 지적들이 나왔습니다.

    전 대톨령인 룰라님의 후광 덕에 첫 선거는 쉬웠지만 이번 선거에선 중도우파 야권연대에 부딪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노동자당의 노선을 지키면서 우파들도 다독이고(그러려면 무엇보다 정체에 부딪친 경제성장에 다시 박차를 가하는 게 가장 큰 과제이겠지요), 선거 막바지에 최대 악재가 됐던 국영 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부패스캔들을 비롯한 부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입니다.

    지난해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반정부 시위대 상당수는 노동자당의 우경화에 반대해온 강경 좌파들이라고 합니다. 이번 선거에선 이들이 ‘비판적 지지’를 해줬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지세력이 등돌리지 않게 하는 것은 난제가 될 것같습니다.(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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