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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대인들이 점령하던 패션산업을 한민족 특유의 민첩성으로 장악하여, 월 매출 100만달러가 넘는곳도 수두룩 하다.
    중산층 공략 이젠 고가브랜드 도약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를 장악하기 위한 각국 기업들의 불꽃 튀는 경쟁은 ‘현지화를 통한 세계화’, 즉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globalization+localization)’을 뜨거운 화두로 던지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지역적 특수성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최신 글로벌 트렌드를 각국 고유의 틀에 담아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전체 인구 1억8000만명인 대국 브라질의 여성 의류 시장을 장악한 것이 바로 0.03%밖에 안 되는 한인들이다. 브라질 여성 의류의 30%, 그리고 외국 수입 명품과 국내 고가 브랜드를 제외한 중저가 의류의 60%를 한인 업체들이 좌우한다. 상파울루 여성 의류 메카인 ‘봉헤치로’ 상가들은 ‘뉴 남산’ ‘나빌레라’ ‘일신’ 등 익숙한 한국 이름 간판을 달고 있다.


    세계의 패션 흐름을 재빠르게 포착해 나날이 전문화·대규모화하며 브라질에 승리의 깃발을 꽂은 한인들. 패션에 민감한 브라질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 그들이 도입한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살펴본다.

    세계의 비즈니스는 글로벌 하늘에 머리를 두면서 현지의 땅에 발을 디디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 on=globalization+localization)’의 구현에 골몰하고 있다. 최신의 글로벌 트렌드와 경영기법으로 무장하지만, 각국 고유의 옷을 걸치고, 관습을 익혀 경계심을 허물고 있다. 인구 1억8000만명의 대국 브라질에서 0.03%의 한인이 여성의류시장을 장악했다. 세계의 패션 흐름을 브라질 중저가 현지 시장에 특유의 방식으로 접속한 것이다. 이들의 성공스토리다.

    지난 19일 브라질 상파울루 시내 투바비치 거리에 대형 관광버스 20여 대가 줄지어 서기 시작했다. 차량번호판에는 최남단 주(州)인 ‘히우 그란데 도 술’부터 북단인 ‘히오 그란데 도 노르치’까지 브라질 전국의 지명이 골고루 섞여있다.

    잠시 후 배낭과 손가방을 둘러맨 상인들이 줄줄이 차에서 내려 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의류 매장들이 모여있는 봉헤치로(Bom Retiro) 상가 지역. 브라질 여성 패션 의류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카니발 축제의 흥분이 가라앉으면, 전국의 여성 의류 도소매상들은 이곳으로 순례를 시작한다. 다가올 겨울에 승부를 걸 의류를 구입하는 행렬이다.

    거리마다 말끔하게 치장한 쇼윈도 간판을 소리 내어 읽으면 낯익은 이름들이 귀에 들어온다. ‘뉴 남산’ ‘나빌레라’ ‘유니나’ ‘일신’…. 한국 이름이다. 이곳 상권은 한국 교민들이 장악하고 있다. 봉헤치로 지역에 있는 1200~1300개 매장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 곳과 붙어있는 또 다른 의류전문 매장 브라스 지역도 마찬가지. 1800개 업체 중 상당 수가 교민 소유다.

    전체 인구 1억 8000만명인 대국 브라질. 이 곳에서 한줌도 안 되는 5만명의 교민이 여성패션 의류업계를 휘젓고 있다. 의류업 종사자의 민족별 통계는 없다. 하지만 현지 업계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브라질 여성 의류의 30%, 그리고 외국 수입 명품과 국내 고가 브랜드를 제외한 중저가 의류의 60%를 한인 업체들이 좌우한다는 게 정설이다. 빈부 격차가 큰 이 나라에서 소비자는 대부분 중저가 의류를 찾는다. 어지간한 브라질 여성들은 한인이 만든 옷을 걸치고 있는 셈이다.

    브라질 한인상공회의소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 교민의 60%가 의류업에 종사한다. 브라질 교민의 성장사(成長史)는 눈물로 쓴 브라질 여성 의류업 장악의 역사다. 40여년 전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온 교민들은 여성 옷을 만들어 생계를 이었다.

    원래 브라질 의류의 터줏대감은 유대인들이었다. 이민 초기인 1968~1975년 사이 교민들은 유대인들에게 물건을 공급했다. 하지만 특유의 경쟁력으로 시장을 잠식해 간 교민들은 1980년대부터는 봉헤치로와 브라스 상권을 장악했다. 비결은 가격. 초기 교민들은 따로 일손을 쓰지 않고 온 식구가 천을 자르고 바느질을 했다. 가격 경쟁에서 절대 우위일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생산판매방식에 대변화를 주었고, 이것이 시장의 흐름과 맞아 떨어졌다. 상인들의 주문을 받아서 생산하는 종전의 방식을 바꿨다. 트렌드를 예측해서 물건을 미리 확보해두면 고객이 골라 사가는 ‘스톡세일즈’ 방법을 도입했다. 소매상들이 입맛대로 골라 사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판매가 저조하면 손해는 고스란히 공급자가 떠안는다. 시장의 동향을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는 기법인 셈이다.

    패션 의류는 한인들의 기질과도 맞아떨어졌다. “여성 의류는 트렌드가 변화무쌍하고 생산부터 판매까지 회전율도 빠르죠. 속전속결로 대응하는 업체들만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에스콰이어 패션의 윤득수(65) 사장은 한민족의 ‘민첩성’과 기동성을 승리의 비결로 꼽았다.

    이곳 의류 업체들은 대부분 매장과 공장이 붙어있다. 디자인부터 재단·봉제·판매까지 한꺼번에 해결한다. 20~30명씩 직원을 두고 2~3층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면 1층 매장에서 내다파는 식이다.

    가내수공업에서 출발한 한인 업체들은 나날이 전문화·대규모화하고 있다. 단순 작업은 이제 인건비가 싼 지방이나 중국에서 아웃소싱한다. 월 매출액이 100만달러를 넘는 곳도 수두룩하다. 전국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업체도 3~4곳이 된다.

    한인 의류업체 중에서도 선두권에 속하는 ‘일신’은 최근 브라스에 현대식 공장을 세웠다. 직원 128명이 윈피스 투피스 블라우스 치마 파티복 등 각종 옷을 월 45만벌씩 생산한다. 12명에 이르는 디자이너들은 연 4회 이상씩 프랑스 파리·이탈리아 밀라노·스페인 마드리드, 미국 뉴욕 등 세계 패션 중심지를 돌며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매출은 연 3500만 달러 규모에 이른다. 이중 50%는 미국·스페인·이탈리아에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수출한다. 이달부터 TV광고도 시작하고 패션 전문지에 광고도 한다.

    한인 업체들은 이제 서로가 최대의 경쟁자일 정도로 성장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일신 박종기 사장은 “10~20년 잘 해왔다고 해도 하나 둘 실패하면 곧바로 시장은 매정하게 등을 돌린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한국 교민들은 이곳 중저가 여성 패션 의류 업계의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비결은 시장의 흐름을 빨리 읽고 제품화하는 데 있다. 상파울루 봉헤치로의 한 한인 여성 의류 공장에서 직원들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모습. / 상파울루=전병근 특파원
    세계 각지에 디자이너를 보내 패션 동향을 파악하지 않으면 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하고 만다. 패션 시즌이 되면 한인업체들은 300명 이상의 디자이너들을 외국으로 파견한다. 원단 제조·수입업자들과 수시로 정보를 교환하고, 디자이너가 현지에서 바로 샘플을 보내면 즉각 제작에 들어간다. 속도에서 뒤지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인 업체들은 고가 브랜드 구축에 눈을 돌리고 있다. 브랜드화를 위해 독자적으로 전국적인 유통망을 만들고,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구상을 하고 있다.

    한인업체들의 활약상에 대해 브라질 사회나 현지 언론들은 호의적이다. 한인의 의류매장 덕분에 인근 지역 상권까지 살아나면서 점포 임대료도 덩달아 뛰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호베르토 샤드(Chadd·65) 브라질의류협회 회장은 “한인들은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일종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방식으로 성공했다”면서 “지금도 전국 상인들이 봉헤치로에만 가면 유행의 흐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여긴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인업체들은) 시장 파악과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며 “구매력 있는 중산층을 타깃으로 한 전략도 효과적이어서 앞으로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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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옷사세요.''벤데도리''에서 巨商 되기까지

    브라질 사람들은 하루에 두 번 옷을 차려입는다는 말이 있다. 아침에 출근할 때 한 번, 퇴근 후 저녁 모임이나 데이트·파티 등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게 또 한 번이다. 특히 여성들은 옷에 신경을 많이 쓴다. 개성 넘친 옷차림의 여성들이 많아 패션쇼장에라도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세계 패션모델업계에서 브라질이 선두를 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런 브라질의 중저가 여성 패션 의류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한인들은 시대별로 다르게 변신했다.

    초창기인 1960~1970년대는 단순 모방 제작 단계였다. 독자적인 디자인은 생각할 겨를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어디서든 완제품을 구해다가 본을 떠서 그대로 찍은 듯 만들어 냈다. ‘짝퉁 판매’다. 홍콩이나 일본 등지에서 누가 옷 하나라도 가져오면 여러 집들이 돌려가면서 본을 떴다.

    판매는 가가호호 방문 세일즈였다. “그 땐 말도 안 되지, 가게를 차릴 돈도 없지, 그냥 무작정 집집마다 다니면서 이 나라 말로 ‘안 사도 좋으니 구경만 하라’고 적은 종이를 보여주곤 했지요.” 이북 함흥 출신으로 30대에 브라질로 이민왔다는 강춘섬(72) 할머니의 회고다. 이 때 나온 말이 ‘벤데도리’였다. 손바닥을 치며 집집마다 방문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디자인 차별화에 주력했다. 업체들마다 전문 디자이너를 직원으로 두고 틈나는 대로 해외 패션 시장을 돌게 했다. 해외 패션쇼뿐만 아니라 지방을 다니면서 브라질 특유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도 애썼다. ‘일신’의 박종기 사장은 브라질 여성패션의 특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즐기는 편이고, 화려한 무늬도 과감하게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제 한인 업체들은 세대 교체기를 맞았다. 어릴 적 부모와 함께 이민 온 1.5세대들이 바통을 넘겨받거나 2세대로 향하는 단계다. 가업을 잇는 이들 중에는 패션을 전공했거나 전문적인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이들이 적지 않다.

    “앞선 세대들은 근면성실로 기반을 닦았습니다. 다음 세대의 과제는 더욱더 창조성을 발휘해 브라질 굴지의 고가 브랜드로 도약하는 것이겠지요.” 한인 의류업체 ‘세이키’의 한형석 사장은 미래를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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