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마 호세프(68)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안이 17일(현지시간) 하원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브라질 역사상 대통령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하기는 1992년 10월 페루난두 아폰수 콜로르 지 멜루 당시 대통령 때 이후 24년만에 처음이다. 지 멜루 당시 대통령은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탄핵절차가 시작되자 사임을 발표했다. 그의 사임 후에도 상원에서는 탄핵 절차가 진행되어 최종적으로 그에 대한 탄핵을 가결, 8년간 공직 취임이 금지됐다.
호세프는 한때 '브라질의 여걸' ' 브라질의 대처' '삼바 여풍의 주인공' 등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좌익 게릴라 출신에서 중도 좌파 정치인을 변신한 그는 지난 2010년 제4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당시만 해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못지 않은 세계적인 여성 리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호세프는 1947년 브라질 벨루 오리존치의 중산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혈통은 불가리아 계이다. 호세프는 대학생 시절인 1964년 군부쿠데타가 발생하자 좌익 반군 단체에 가담해 군부독재에 맞서 싸웠다. 무기를 들고 정부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던 그는 체포돼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수감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복역 중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중도 좌파로 전향한 그는 출소 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민주노동자당(PDT)를 공동 창설했으며, 2000년 노선충돌로 당을 나와 노동자당에 입당했다.
1980년대부터 공직생활을 한 그는 1990년대 초 리우그란데 도 술 주의 주에너지장관을 맡아 큰 성과를 이뤄내면서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생활 면에서는 두 번 이혼했고, 자녀로는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폴라(30)를 두고 있다.
호세프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 간의 본격적인 인연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너지 전문가 자격으로 당시 룰라의 대선 캠페인 참모가 된 호세프는 2003년 에너지 장관에 발탁됐고,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기업공개(IPO)를 이뤄냈는가하면 브라질 내 첫 상업 유전 개발에 나서는 등 과감한 정책을 폈다.
호세프는 2010년 룰라 전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경제가 악화된 가운데 2013년 대규모 반정부·반부패 시위가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정치권의 부정부패 척결과 공공서비스 개선을 요구했고, 국회의 퇴직의원 퇴직금 인상안 처리에 분노하며 연일 시위를 벌였다.
2014년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개최를 마무리 지은 호세프는 그해 10월 2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상대 후보인 아에시우 네베스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후보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수뢰사건에 집권 노동자 당 관계자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호세프의 탄핵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브라질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호세프의 지지율 역시 급락했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으로 브라질 전역이 들끓었다.
IMF는 지난 12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브라질의 성장률을 - 3.8%와 0%로 예상했다.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1월 보고서 때의 -3.5%보다 0.3%포인트 하향 조정됐다.브라질 경제는 지난해 - 3.8%의 성장률을 기록, 1999년 디폴트(채무불이행)선언 이후 25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냈다. IMF는 또 공공부채 비율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73.7%에서 올해 76.3%로 높아지고 2021년에는 91.7%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